[행복한 교육] 3·1혁명, 누구를 기억해야 하고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 임성무(대구강림초등 교사)
작성자 최고관리자

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

 

서울 가는 기차에서 어느 신문이 대구와 광주가 맺은 달빛동맹을 높이 평가하는 글을 실은 것을 보고 흐뭇했다. 최근 국회의원들의 5·18망언에 대해 시장들이 주고 받은 글 때문이다. 서울에 오니 사람들이 대구는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곳인줄 알고 있다. 나는 대구가 보수적이지만 격이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대구시장의 글이 나름 내 설명의 근거가 되었다.

대구교육청이 위기다. 무엇보다 교육감이 당선무효형을 받았고 항소를 했지만 5월까지 버틸까 싶다. 그런 교육청이 학생안전을 핑계로 모든 학교 현관에 지문인식기를 도입하겠다고 해서 시끄럽게 하더니 이제는 교육감 스스로 구중궁궐 속으로 숨어 들 모양이다. 열린교육감실이 대세일 텐데 대구교육청에서 교육감을 만나려면 현관문에서 지문인식을 하고 2층으로 올라가 교육감실 앞 복도에 새로 설치된 유리문에서 다시 지문인식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비서실에서 대기해야 만날 수 있다. 왜 자꾸만 거꾸로 갈까.

3·1혁명이 다가오고 있다. 대구에서 서문시장 만세운동이 일어난 3월8일에 맞추어 경북대에서 학술행사가 열린다고 해서 반가웠다. 만세 재현도 필요하지만 3·1혁명에 참여한 대구경북 사람들의 활동에 대한 공과를 살펴보고 무엇을 선양하고 반성할지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때 참 의미있는 행사라고 본다. 나는 기쁜 나머지 소발제로 종교의 역할을 맡은 분께 전화를 했더니 천도교, 개신교, 불교의 역할은 발표하지만 천주교는 언급하지도 않는다는 말을 듣고 당황했다.

그러던 중에 며칠전 한국천주교회는 3·1운동에 대한 고백과 반성을 발표했다. “한국 천주교회는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민족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고 저버린 잘못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성찰하며 반성한다. 해방을 선포해야 할 사명을 외면한 채 신자들의 독립운동 참여 금지와 일제의 침략 전쟁 참여, 신사 참배를 권고하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의 대표단에 천주교지도자는 단 한 명도 없다. 1909년 조선교구장 뮈텔은 도마 안중근을 파문했다. 안중근과 같은 많은 열혈 신자들이 가졌을 자괴감은 얼마나 컸을까. 주교가 독립운동을 금지한다고 평신도들이 가만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신앙심 이전에 민족정신을 그냥 침묵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구경북 어디에서도 천주교회의 말대로 “교회 지도자들의 침묵과 제재에도 개인의 양심과 정의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이름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한 천주교인들도 기억하고자” 해도 기억할 것이 없다. 3월5일 대구 유스티노신학생들이 드망즈주교의 퇴학과 폐교 협박에도 독립가를 불렀다고 하여 지도 교사는 해고되었다고 하고 일부 신학생들도 퇴학을 당했을 것이다. 나는 당시 쫓겨난 교사와 학생들의 행적을 찾고 싶다.

대구는 국채보상운동을 자랑하면서 서상돈이 있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2015년 대구지역시민사회단체는 성명을 내고 국채보상운동의 발기인이었지만 강제병합 이후 친일로 돌아선 이들을 선양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서상돈의 친일에 대해서도 강하게 주장했다. 서상돈은 1913년에 사망했지만 그의 아들 서병조는 중추원참의를 지낸 대구 대표 반민족 친일인사다. 심지어 자제단을 만들어 3·1독립운동을 방해했다고 한다. 광복 이후라도 그의 가족들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며 보속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며칠전 서상돈의 묘지를 가보았더니 벌초조차 하러 오는 이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묘지는 덤불이 되었다. 아무도 진심으로 서상돈을 선양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대구시와 교육청은 여기저기 언론보도로 사진으로 그림으로 전시로 자랑하고 있다. 대구는 서상돈을 정확하게 평가해야 한다.

친일한 인사들은 광복이 될 줄 몰랐기 때문에 결국 친일을 선택했다고 변명한다.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친일을 한 이들을 학교에서 가르치거나 선양할 수는 없지 않은가. 대구 아이들에게 대구의 인물을 물으면 서상돈을 말한다.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서상돈을 가르치는 동안 정작 재산을 내어놓고 죽고 다치고 갇히고 밀려났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가려졌다.

3·1혁명 100주년이다. 혹시나 우리 안에 남아있는, 살펴보지 못한 친일의 잔재를 제거해야 하지 않겠는가. 교육청은 지문인식기로 교육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3·1혁명 교육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지침을 내놓아야 한다. 3·1혁명 100주년을 앞두고 이런 저런 생각이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 영남일보에 실린 글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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